【로톡뉴스 법률자문】"그걸로 아동학대 해결되느냐" 소리 듣는 민법 '징계권' 삭제, 의외로 변호사는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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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0-11-05본문
9살 아이는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가락이 지져지고, 빨갛게 달아오른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이 찔렸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폭행 후에는 목에 쇠사슬이 감긴 채 4층 빌라 꼭대기 테라스에 묶였다.
하루에 한 끼만 밥을 먹으며 이틀을 버텼다. 아이는 부모 감시가 허술해진 틈을 타 지붕을 타고 탈출했다.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부모는 경찰에 붙잡혔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그랬다."
부모는 경찰에 이렇게 말했다. 훈육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7시간 동안 여행 가방에 감금됐던 아동이 사망하는 사건에서도 가해자인 계모는 "훈육이었다"고 변명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빠지지 않는 '훈육 주장'에는 법적인 근거가 있긴 하다. 민법(제915조)이 보장하는 부모의 징계권. 아동학대 사건이 빈발하자 법무부는 지난 10일 이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이 방안을 두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법 때문에 아동학대가 있었냐" "아동학대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 등 '징계권' 삭제로 아동학대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사안을 검토한 변호사들 대부분은 징계권 삭제에 대해 대부분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온라인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공통적으로 '아동 체벌'에 대한 인식 전환을 그 이유로 꼽았다.
법률 자문'변호사 최한나 법률사무소'의 최한나 변호사, '법률사무소 덕률'의 이광웅 변호사, '변호사 도이현 법률사무소'의 도이현 변호사. /로톡 DB
징계권이 체벌을 정당화하는 의미로 비치며, 아동학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변호사 최한나 법률사무소'의 최한나 변호사는 "민법 제915조 조항에는 체벌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징계권의 해석에 따라 징계에 체벌이 허용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됐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실제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해자인 친권자가 자녀에 대한 폭력적인 학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훈육 목적의 체벌이었다고 주장한 경우,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져 감경된 사례들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징계권 조항 때문에 법원이 강하게 처벌하지 못하는 요소로 작용해왔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징계권이 삭제되는 방향에 찬성하며, 아동 체벌 자체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다.
법률사무소 덕률의 이광웅 변호사도 "누군가의 신체에 해악을 가하는 행위를 그동안 징계권이나 교권으로 표현하며 봐주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런 권한을 넘어 학대가 발생했다"며 "(이번 징계권 삭제가) 내 아이라도 함부로 징계할 수 없다고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징계권'이 민법에 존재하는 한 사안의 쟁점이 "징계권 행사의 정도가 지나친지 아닌지"로 집중된다는 취지다. 즉, 체벌 자체가 아니라 체벌의 정도를 놓고 따지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징계권을 삭제하면 체벌과 징계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이어 이 변호사는 "체벌이 신체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를 제재하는 게 명백하기 때문에 훈육이라고 해도 아이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훈육이었다고 핑계를 대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작 사유다"라고 했다.
반면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 변호사도 있었다.
'변호사 도이현 법률사무소'의 도이현 변호사는 "민법 제915조에서 징계의 목적은 자녀의 보호 또는 교양에 있고, 징계의 수단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며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 대부분 이런 것을 충족하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에 징계권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무리한 입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징계권 삭제나 체벌 금지가 아동학대를 막을 방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도 변호사는 "일체의 체벌을 제외하는 것보다 금지되는 체벌의 유형을 명시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했다.
징계권 삭제를 긍정적으로 본 변호사들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현장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한나 변호사는 "아동 관련 기관에서 대응이 늦었거나, 아동을 다시 학대가정으로 보내는 등의 이유로 더 큰 학대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며 "법 개정만이 아닌 아동 관련 기관 대응과 관련 업무자들이 아동학대에 관하여 예민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조항을 수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장에서 아동학대를 감시하고 예방하는 전문가들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취지다.
최 변호사는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는 경우 엄격한 분리 조치를 시행해 추가 피해를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여진다"며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 대한 교육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이현 변호사도 "아동학대와 관련한 사전적·사후적 조치들을 실효성 있게 집행하고, 학대 전력이 있는 가정으로 쉽게 아동을 돌려보냄으로써 발생되는 아동학대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만큼 입법 등의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